여성 그곳 사진

Press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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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 here SNS

09 February 2017 07:32:32 동아닷컴 : 동아일보 문화 뉴스

지난 1월 〈여성동아〉 W DONG-A SNS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도깨비도 다녀간 그곳 ‘도깨비 커플’ 공유와 김고은이 방문해 인기를 얻고 있는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여성동아〉도 얼마 전 두 사람이 촬영 대기 장소로 자주 이용하던, 그곳의 카페 오아시아 사진을 SNS에 올려 궁금증을 자아냈었죠. 저희도 촬영 때문에 방문을 했던 건데, 어떤 칼럼에 등장하는지 눈여겨봐주세요. 비 · 김태희 결혼 현장에 함께하다 비와 김태희 커플이 전격 결혼을 발표하고 1월 19일 부부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결혼식 당일 오전까지도 비밀에 부쳐졌던 결혼식 현장에는 〈여성동아〉도 함께했습니다. 덕분에 하객 도착 소식을 알린 여성동아 공식 인스타그램은 순식간에 좋아요 수백 개가 폭주! 첫 번째 하객 박준형과 박진영의 ‘좋아요’ 경쟁에서 박진영이 약간 앞선 건 아무래도 사장님이기 때문일까요. # womandonga 유난희 파워풀! 2017년 〈여성동아〉의 첫 표지를 장식한 주인공은 유난희

Vice 문화 Time09 February 2017 0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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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사진과 이야기···‘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17 August 2016 07:51:56 경향신문:전체기사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는 지금은 사라진 용산역 앞 성매매집결지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일해온 중장년 여성들이 함께 했던 사진 모임이다. 2009년 1월 시작한 사진 모임은 집결지가 철거되고,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

Vice null Time17 August 2016 07:51:56


“누구든 학대아동 도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15 March 2016 13:10:47 전체기사 : 뉴스 : 한겨레 뉴스 - 인터넷한겨레

오미보(사진·38) 감독은 조부모,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재일교포 3세다. 그가 만든 영화 중 <그곳에서만 빛난다>는 일본의 대표적 영화 잡지 <키네마 준보>에서 선정한 2014년 베스트 영화 1위, <너는 착한 아이>는 2015년 베스트 톱 10에 올랐다. 재일한국인 여성감독이면서 일본 영화 차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그가 <너는 착한 아이>의 24일 개봉을..

Vice 모든 뉴스 Time15 March 2016 13:10:47


휑한 위안부 피해자 묘지, 주변엔 '복수초'만 피었다

14 March 2016 13:15:45 오마이뉴스 - 전체기사

할머니께서는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돼 만주 봉천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해방 후에도 온갖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2007년 3월 12일 여든아홉 인생을 마감하셨다.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10년 만에 다시 섰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 파묻혀 할머니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개봉 소식을 들었지만, 그 절절한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를 다시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주저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부경남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던 언니가 우리 부부가 진주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운을 띄웠다. "이번 주말(3월 12일)이 김우명달 할머니의 기일이니, 산소에 같이 가자." 기억 넘어 잊고 있던 사람들이 흑백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게다가 요즘 영화 상영관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얼굴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20대 시절, 할머니들에게 애정이 있는 선배·친구들과 함께 '밥과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우리의 활동은 2003년 3·8 세계여성의 날 즈음해 하동 악양의 정서운 할머니를 경상대에 모시면서 시작됐다. "조국이 힘이 없어 끌려간 것인데, 부끄럽다면 조국이 부끄러워야지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정서운 할머니의 강단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외로워 보이는 무덤 그리고 노란 복수초 지난 13일. 묘비석도 없고, 그 흔한 조화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잠들어 계신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섰다. 죽어서도 서럽고 외로움에 시간을 쓸쓸히 견뎌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생각하니 할머니의 삶이 더욱 가엾다. 함께 간 언니는 김우명달 할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라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며 평소 좋아하시던 식혜와 곶감을 올려 조촐한 상을 차렸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지요'라고 두 번의 절을 올리고는 뒤를 돌아보니 노오란 복수초들이 환하게 할머니의 삶을 비추는 촛불처럼 묘지 주변으로 피어있다. 이날 나와 함께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를 찾았던 남편은 할머니 장례를 치를 때 마을 뒷산에 피어 있었던 복수초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복수초 꽃잎 하나 하나에 할머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너거도 산다고 바빴제, 그래 정신없었을 끼다. 잘왔다. 고맙다..' 정대협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8명 중 2016년 2월 20일 기준으로 마흔네 분이 살아계시다고 한다. 현재 진주를 포함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모두 소천하셨다. 할머니들의 명예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실험본 교과서에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진 제목과 함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다"라는 사진 설명이 서술됐으나, 최종본 교과서에는 사진이 삭제되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구체성이 결여된 서술로 바뀐 것이다. 할머니들의 아픈 삶이 아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지금 저 산 속에서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복수초처럼, 할머니들 곁을 지켜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됐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Vice null Time14 March 2016 13:15:45


북한강 철교,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24 February 2016 08:41:28 오마이뉴스 - 전체기사

지난 23일 양수리에 다녀왔습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오전 8시 30분에 전철을 타고 양수리역에서 내리니 오전 10시가 됐습니다. 양수리에서 물안개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이 시간에 물안개는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물안개를 보려면 집에서 오전 6시 이전에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수역에서 내려 강가 산책길을 걷습니다. 갈대가 바람에 날리는 강가 산책길은 보는 것도, 걷는 것도 즐겁습니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걷고 있는데 앞에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아저씨가 다가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벌써 다 찍으시고 돌아 가시는군요." "두물머리에서 물안개를 찍고 오는 길입니다." "저도 물안개를 찍으려고 왔는데 게을러서 이제야 도착하였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한 분이 라이카M 카메라를 들고 서 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뭘 기다리시나요?"라고 물으니 "고니를 기다립니다"라고 합니다. 가끔 이곳에 날아온다고 합니다. "좋은 사진 많이 찍으세요"라고 말을 건넨 뒤 전 세미원 쪽으로 향합니다. 세미원 앞 도로를 걷고 있는데 젊은 여성 둘이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하고 있다가 내게 길을 묻습니다. "아저씨, 사진 액자가 있는 곳으로 갈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양수리 느티나무 옆에 있는 액자를 말하지요?" "나도 그곳으로 갑니다. 같이 갑시다." 이 아기씨들은 양수리에 처음 왔다고 합니다. 느티나무 옆에서 핫도그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보고 왔다고 하더군요. 양수리로 가던 중 상춘원에 들러 매화와 동백을 구경하고 양수리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사람들이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손주로 보이는 청년은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습니다. 할머니를 부축하고 사진을 찍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느티나무를 지나 액자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쌀쌀한 날씨라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두물머리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가다 보니 버드나무 아래 의자가 놓여 있고 한 무리의 사진 동호회원들이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이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바라 보이는 경치는 아름답고 바람은 갈대를 쉬임 없이 춤추게 합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갈대쉼터를 지나 양수대교로 향합니다. 양수대교를 건너기 전 건너편을 보니 30년 전통 멸치국숫집이 보입니다. 날씨가 추우니 국수 한 그릇 먹고 가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식당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만둣국, 멸치국수를 먹고 있습니다. 따뜻한 멸치국수를 먹고 나니 온몸이 따뜻해집니다. 양수대교를 건너며 북한강을 바라 보니 마침 전철이 다리를 통과 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오래된 양수리 북한강 철교가 보입니다. 이 철교는 언뜻 보면 임진각 옆 철교와 닮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북한강 철교로 걸어갑니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입구에는 옛날 초소로 사용하다 지금은 찻집으로 변한 카페가 있습니다. 오래된 철교와 어울려 운치가 있습니다. 강변으로 내려와 운길산역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이날 양수역에서 두물머리를 거쳐 운길산역까지 걸었습니다. 만보계를 보니 1만5000보를 걸었다고 나오네요.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고 연한잎이 나오는 봄에 다시 한 번 이길을 걸어야겠습니다.

Vice null Time24 February 2016 08:41:28


최의정 할머니가 모교 강당에서 결혼식 올린 사연

03 February 2016 04:43:37 오마이뉴스 - 전체기사

군산의 진산 월명산(105m)을 비롯해 장계산·설림산·점방산 등으로 이뤄진 월명공원. 이곳에 오르면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흐르는 금강과 '군산 팔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 그 월명공원 산자락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군산여자고등학고(아래 군산여고)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군산여고는 융희 3년(1909) 3월 공립군산실업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16년 4월 1일 군산부 금정(군산시 금동) 1번지 군산거류민단역소(일본인 자치행정기관) 건물에 개교했다. 당시 학교명은 군산공립실과고등여학교. 학제는 2년제, 전체 학생은 8명이었다. 이후 조선인 학생은 입학이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잦은 교명 변경과 학제 개편을 거치면서 성장해왔다. 초기에는 군산심상고등소학교(군산초등학교 전신) 교실과 운동장을 빌려 수업이 이뤄졌다. 1918년 2월 2년제 보통과 학생들이 최초로 졸업했고, 1921년 4월 군산공립고등여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는다. 이때 4학급으로 증설하고 수업연한도 4년으로 연장된다. 1923년 9월 월명동 지금의 위치에 본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옛 신문에 따르면 1928년 전교생 200명(4학급)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1223평)이 조성됐다. 그리고 1940년 전교생이 400명(8학급)으로 증가함에 따라 공사비 8만여 원을 들여 운동장(2500평)을 확장했다. 기숙사도 20명에서 60명 수용시설로 개축하고, 강당도 200평으로 증축한다. 이때 식물원(1000평)과 농원(200평)도 신축됐다. 1945년 광복이 되고 그해 11월 국립군산여학교(4년제)로, 1947년 6년제(2학급) 군산공립여자중학교로 개편됐다. 1951년 9월 학제 개편에 따라 중·고 각 3년제로 변경되고, 1970년 9월 군산여중(현 진포중)과 군산여고로 분리돼 오늘에 이른다. 군산여고는 일본인 자녀 고등교육을 위해 전북에서 최초로 설립된 여성 교육기관이다. 학생 8명으로 닻을 올린 지 99년이 지난 2015년 3월 31일 현재 졸업생은 2만3000여 명. 이 학교는 일제 식민치하와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 남북분단(1948), 한국전쟁(1950~1953) 등 격동의 현대사와 고락을 함께하며 여성 인재를 꾸준히 배출해 지역 명문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고달팠던 시절에 읽은 선배님이 존경스러워요" 밤새도록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던 지난 1월 26일 오후. 유정실(85) 할머니가 사는 군산시 문화동 H아파트를 찾았다. 유 할머니는 군산여고 1회(6년제) 졸업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은 소중한 것. 조금 있으니 동문들이 애틋한 추억을 찾아 하나둘 모여든다.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들이다. 반백의 머릿결과 주름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자리를 함께한 군산여고 동문은 유정실(1회), 최의정(6회), 박매자(37회), 김경림(47회), 이상숙(54회) 등 다섯 명.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최의정(79) 동문이 내놓은 사진은 모두 서른네 장.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수다는 시작되고 아파트 거실은 겨울밤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옛날 안방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중학교 졸업사진을 비롯해 지금은 사라진 '개항 35주년 기념탑' 앞에서 급우들과 찍은 사진, 논산 은진미륵을 배경으로 찍은 수학여행 기념사진, 꽃다발을 움켜쥐고 찍은 졸업사진, 단오절 행사장, 삼일절 가장행렬, 육상대회 우승 기념사진 등 환갑진갑 다 넘었을 사진들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인화지에 아름답게 수놓인 자그만 기억들은 그 자체로 애틋하고 풋풋하다. 여고를 졸업한 이듬해 찍은 결혼사진이 새카만 후배들의 시선을 모은다. 최정희 할머니는 "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했는데, 혼례는 중학교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올리고 싶었으나 교장이 육상 선수로 모교의 명예를 빛냈으니 꼭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고집해서 어쩔 수 없이 강당에서 예식을 치렀고, 주례만 목사님을 모셨다"라면서 졸업 후에도 자신을 잊지 않고 예뻐했던 교장 선생님을 떠올렸다. 여고 시절 규율부장을 하였고, 국내외 베스트셀러도 많이 읽었다는 유정실 할머니는 "수업이 끝나면 강변을 거닐던 급우들과 극장 영사실에 숨어 영화를 관람하던 일들이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온다"라면서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었다. 어느 후배가 "유 선배님은 여고를 졸업하고 상업은행 군산지점에서 3년쯤 근무하다가 결혼, 10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행상으로 어렵게 살아오셨다"라고 하자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주제가 학창시절 교실 풍경으로 바뀐다. 인형처럼 귀엽고 예뻤던 친구, 호쾌한 성격에 늘 말괄량이였던 친구, 가수와 영화배우를 꿈꾸던 친구, 성악가를 희망하던 친구, 얌전하고도 심지가 굳었던 친구, 의리짱 친구, 문학소녀였던 친구, 쌍꺼풀에 목숨을 걸었던 친구, 비지땀을 흘리며 달리기 연습하던 친구, 젠사이(단팥죽)를 먹으며 깔깔대던 친구 등. 손자 손녀를 서넛씩 본 할머니들은 나이를 잊은 듯 여고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군산여고 동문들과 함께한 시간은 1시간 남짓. 아파트를 나오면서 만난 이상숙 동문은 "선배님들의 여고 시절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세대 차가 컸음에도 학창시절이라는 공통분모의 추억을 공유하는 기회가 됐기에 너무 소중했다"라면서 "개교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교 역사를 조금 알게 됐으나 두 분 선배님들을 만난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군산여고 졸업생이라는 자긍심을 다시 느꼈던 자리였어요. 운동회, 육상대회, 졸업식, 결혼식, 유명했던 빵집, 사감 선생 몰래 영화관람 등…. 아련한 추억과 향수가 담긴 선배님 사진과 학창시절 이야기는 교정과 교복만 다를 뿐 저희와 다를 게 없었어요. 여고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는 상기된 목소리에서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죠. 고달팠던 시절에 유정실 선배님이 소설 와 을 읽었다고 할 때는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100주년 개교기념일에 만났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진즉 개교 100주년 행사 추진위를 발족시킨 군산여고 총동문회는 지난 12월 26일 '자랑스러운 군산여고, 우리는 영원한 향파'라는 타이틀로 정기총회와 동문의 밤 행사를 열었다. 그 후 동문들은 모교 발전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는 그동안 사랑하고 격려해준 시민과 함께하는 '군산의 축제'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유귀옥(43회) 총동문회장의 각오다. 엊그제는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글을 발견했다. 2012년 8월 17일 신슈마미(magma****) 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군산 방문기(여고시절의 추억 - 군산여고, 은파유원지를 가다)였다. 정성이 묻어나는 글에서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는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 만나면 좋겠다며 여고 시절 소풍을 함께 다녔던 절친(급우)들을 찾고 있었다. 아래는 신슈마미님 글이다. "군산에서 근대문화유산답사 과정에 나의 모교를 지나가는 일이 생겼어요. 우~~ 일부러 가기도 어려운데 블로그 포스팅하면서 이런 우연 같은 필연으로 모교를 찾게 됐어요. 저는 모교를 '대군여고'라고 합니다. 군산에서 명문고이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이니 학교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지금도 남편과 장난삼아 '대군여고' 출신이라며 목에 힘을 주기도 하지요. (중략) … 모교 방문을 마치고 우리가 소풍을 자주 가던 그곳, 은파호수공원으로 갔어요. 은파유원지라고 부르죠. 입구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터널을 만들어 주네요.(줄임) 여고 시절 이곳(은파유원지)으로 소풍 와서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어디서 살고들 있는지 소식도 모르지만 절친들. 이름은 아직도 선명하거든요. 김민정, 박혜숙, 오수경, 김옥화, 김재숙... 100주년 개교기념일에 만났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한편, 군산여고 100주년 기념행사는 오는 4월 2일 오후 2시 군산여고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Vice null Time03 February 2016 04:43:37


2005년 양양산불의 악몽을 떠올린 화재현장

19 January 2016 10:26:49 오마이뉴스 - 전체기사

지독한 겨울가뭄에 한파까지 몰려와 강이 말라간다. 양양군 실내체육관을 들렀다 집에 돌아오는 길,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작은 불씨라도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화마로 돌변할 수 있는 조건이다. 10여 년 전 양양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될 때도 이런 날씨였다. 뻣뻣한 은박매트가 비닐처럼 나부낀다. 대청봉 방향으로 해발 1400m 이상 되어야 눈이 조금 보일 정도로 이번 겨울은 가뭄이 극심하다. 11월로 접어들었을 때 보름 동안 엄청난 초겨울비가 내릴 때만 해도 가뭄이 아니라 수해가 발생할까 걱정스러웠다.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더니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저녁,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 50분 무렵 "서면 장승리 방향 일양레미콘 근처 민가 화재발생! 긴급출동바람"이란 메시지가 들어왔다. 서면 장승리 초입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지점은 대청봉과 화채봉 방향으로 훤히 트인 위치로 양쪽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세찬 곳이다. 콜택시를 부른 뒤 소방대출동복을 챙겨 입고 헤드랜턴과 칼, 스마트폰을 준비해 집 앞으로 나가 도착한 택시를 탔다. "장승리와 서선리 갈림길 근처에 불이 났다니 그곳으로 갑시다." "불이 크게 난 모양이죠?" "아직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바람 때문에 걱정입니다. 산으로 옮겨 붙지는 말아야 할일인데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죠. 오늘 같은 날은 산에 옮겨 붙으면 끌 수도 없을 거 아녜요?" 서면 면사무소에서 양양광업소 방향으로 접어들자 매캐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도로에 세워진 수많은 차량들이 보이고, 양양관내의 소방차들이 모두 출동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택시비부터 던지듯 지불하고 소방호스가 어지럽게 깔린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물을 뿜어대는 소방호스 주변엔 연결부에서 샌 물이 얼어 빙판을 이루었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한다. 뒤로 약간의 둔덕이 있고, 전면에 도로를 낀 민가에서 불이 났는데 앞뒤로 소방차가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그리고 엄청난 분량의 통나무들이 쌓인 곳에서 불길이 일고, 물을 뿌려 연기와 수증기가 뒤섞여 소란스러움을 증폭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강풍 속에서도 민가 일부만 태우고 큰 불은 잡았다. 만에 하나 조금만 늦었어도 산자락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면 '양양·낙산사 산불'로 명명된 2005년 4월 4일 발생해 4월 6일까지 양양군에서 발생했던 산불과 같은 사태로 번졌을 것이다. 당시 '양강지풍'이라 불리는 봄철 백두대간의 동쪽에 부는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로 낙산사가 소실되면서 중요한 문화재들이 불에 타는 쓰라린 경험을 양양군은 간직하고 있다. 헤드랜턴을 켜고 소방호스를 펴주며 불길이 잡힌 곳에 남은 불씨들을 샅샅이 수색하다 그때서야 "사진 촬영을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의용소방대별로 출동한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혼란스러운 탓에 현장에서 사진 촬영을 빠트릴 때가 많다. 장갑을 벗고 사진촬영을 하다 보니 이내 손이 저릴 정도로 시렸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굵은 통나무들을 옮기며 잔불 정리를 할 때서야 서면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커피를 준비해 나눠주기 시작했다. 축사로 사용하던 곳과 화목보일러실, 그리고 벽면을 따라 지붕까지 빼곡하게 채웠던 통나무들이 절반 이상 탈 정도로 불길은 대단했다. 주방과 마루, 두 개의 방을 그나마 수리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화재를 진압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신고 남은 불씨가 있는지 헤드랜턴을 켜고 샅샅이 살피는데 보일러실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감식반이 발화지점을 찾던 곳이기는 하지만, 보일러실에도 바짝 마른 통나무들이 가득한데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니 다급하게 보일러 위의 재를 꺼내는 뚜껑을 열었으나 불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만 자욱하게 피는 속을 철근토막으로 파냈다. 연기는 더 심하게 피어올랐다. 통나무들을 몇 사람의 대원의 도움을 받아 치운 뒤 화목을 집어넣는 전면의 커다란 뚜껑을 열수 있었다. 보일러 속엔 이제 막 화목을 가득 넣은 것처럼 통나무들이 가득한데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처음부터 불이 타고 있었는지, 아니면 주변의 통나무들이 불에 타다보니 그 열기로 불이 옮겨 붙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관창수를 불러 물을 뿌린 뒤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보일러 내부의 나무들을 꺼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뿌렸어도 밖으로 끄집어낸 나무에선 곧장 불길을 살아났다. 방화장갑을 낀 소방대원과 교대를 한 다음에야 기침이 나왔다. 방화방수기능이 있는 장갑을 소방관들도 사비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의용소방대원들에게 지급될 일이란 없을 것 같다. 헤드랜턴도 등산을 다니니 갖추고 있고, 의용소방대원들이 지급받은 출동복은 불길을 차단하는 기능 자체가 없다.

Vice null Time19 January 2016 10:26:49


여기가 호남 최대 집창촌이었다니...

08 July 2015 12:53:44 오마이뉴스 - 전체기사

일제강점기 군산 백정상점(白井商店)에서 홍보용으로 발행한 우편엽서 사진이다. 위치는 군산부(군산시) 산수정(山手町). 지금의 명산동 거리다(공영주차장~명산사거리). 비포장이지만 도로가 잘 정비되고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것으로 미루어 1930년대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일제치하 명산동은 유곽 밀집 지역으로 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창이었다. 도로 왼편의 첫 번째(상반루), 두 번째(玉の家), 세 번째(松の家) 건물 모두가 유곽이다. 가장 높은 네 번째 기와 건물은 일제강점기 호남에서 가장 큰 유곽으로 전해지는 칠복루(七福樓)이다. 놀라운 것은 건물 세 채가 유곽 단지 한 블럭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와를 얹은 상반루 담장은 화려하면서도 묘한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개항 이전에는 명산사거리까지 선박 드나들어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명산사거리'가 나온다. 개항(1899) 이전에는 금강 지류를 따라 선박들이 그곳까지 드나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강 지류는 복개공사 후 일제가 조성한 격자형 도로망에서 6조통으로 불리었다. 오늘의 '대학로'이다. 지금도 명산사거리~내항 도로 밑에는 열두세 살짜리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뛰어다닐 정도로 큰 하수관이 묻혀 있다. 명산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부청(시청)과 내항, 좌회전하면 1910년 광주감옥 군산분감으로 개청한 군산 형무소가 나온다. 사거리 부근에는 1920년대 군산정미업 조합장을 지낸 재벌지주 '모리 기쿠고로(森菊五郞)' 저택과 금강사(동국사)가 있다. 모리(森)는 1935년 월명산 중턱에 고급 저택을 지으면서 정원에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뜻이 담긴 보국탑과 공자묘를 세웠던 인물이기도 하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는 지금의 월명공원이다. 산자락 아래에는 1916년 4월 군산실과고등여학교(2년제)로 개교한 군산여고가 자리하고 있다. 산등성이 왼쪽 줄기는 군산의 진산인 월명산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금비라 신사'(金比羅 神社)와 1926년에 개통된 해망 터널, 대사산 중턱의 '군산 신사'(群山 神社) 등이 들어서 있다. 월명산·장계산·설림산·점방산·대사산 등으로 이루어진 월명공원. 이곳에 오르면 '군산팔경'(群山八景)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지역 명소이다. 개항과 함께 일제가 조성했으며 처음엔 '각국 공원'으로 불리다가 1914년 '군산공원'으로 바뀐다. 1967년 인근을 산림보호지역으로 정하고 '월명공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명산동은 본래 옥구군에 속한 산 아랫마을이었다. 개항 이전에는 새롭게 일어나는 마을이라 해서 '신흥리'라 하였고, 거룻배도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1910년 일부가 군산부에 편입되고, 지명변경에 따라 '6조통', '신흥동', 전정(田町), 경정(京町) 등으로 불리었다. 해방 후 왜식 동명 변경으로 명산동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개항 초기부터 노른자위 땅으로 부각 우리나라 최초 유곽은 1902년 부산에 만들어졌으며 대규모 유곽인 공창은 1904년에 조성된 서울의 '신정유곽'이 시초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04년 는 1901년 당시 군산의 일본인 직업 가운데 기생(게이샤)을 14명, 1903년 21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군산에 유곽이 서울, 부산 등과 비슷한 시기, 아니면 그보다 일찍 들어왔음을 시사한다. 조선 침탈의 야욕에 차있던 일제는 을사늑약(1905) 이전부터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유곽을 조성한다. 그 과정에서 군산의 유곽 후보지 선정을 위해 일본 민단에 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리고 신흥동 산수정(지금의 명산시장 일대), 경장리(팔마산 동쪽 평지), 경포리(고속버스터미널 부근) 등이 후보지로 떠오른다. 세 곳 모두 일본인 지주들 이권과 관련되어 경쟁이 심했다. 군산의 유곽은 지주들의 치열한 경합 끝에 신흥동 산수정으로 결정된다. 그곳은 군산의 금융왕 사토(左藤)의 소유지였다. 사토는 전답과 자그만 저수지가 있던 신흥동 지역을 싼값에 사뒀다가 유곽이 들어설 5천 평을 일본 민회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조건으로 다른 후보들을 물리치고 유치했다 한다. 동경 의학 전문학과를 졸업한 '도쓰가요 시이지'란 일본 의사는 1904년 7월 당시 촌구석이었던 신흥동에 '붕운당(鵬雲堂) 병원'을 개업한다. 사토란 자가 5천 평을 기증할 정도로 많은 토지를 사들이고, 의대 출신 의사가 병원을 개업한 것 등으로 미루어 지금의 명산시장 일대는 개항 초기부터 군산의 노른자위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신흥동 산수정에는 칠복루, 명월루, 방본루, 태평각 산월루, 평남루, 대월루, 송월루, 대화루, 상반루, 군산루, 송학루 등 20여 개의 크고 작은 유곽이 있었다. 일본 헌병 분소와 카페(미유끼카페, 아리랑카페, 히노마루 카페), 살롱, 호텔, 여관, 음식점도 있어 이 일대가 대규모 집창촌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유교적 윤리 체계에서 은근한 멋으로 술과 기예를 즐겼다. 그처럼 기생문화에 익숙해 있던 조선 사람들은 유곽을 거부하거나 터부시했다. 고 하반영 화백은 유곽에 출입하는 사람을 '쫄짜'에 비유해서 '조로야'(卒伍屋)라고 놀렸다고 전한다. 미두장(米豆場)을 배경으로 1930년대 사회상을 풍자한 채만식 소설 에서도 '신흥동 갈보'로 등장한다. 신흥동 유곽은 해방(1945) 후 미 군정청의 공창제도 폐지 방침에 따라 1948년 2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명산시장(유과꼬시장)이 형성되면서 유곽 건물들은 개인에게 매각되어 학교, 공장, 상점, 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1950~1953)으로 피난민 임시수용소가 됐을 때는 한 건물에 30~40가구가 입주, 생활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신흥동 산수정, 해방 후 어떻게 달라졌나 오늘의 명산동 거리 모습이다. 옛 유곽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도 비포장에서 포장으로 바뀌고, 4차선으로 확장됐다. 행인이 뜸해서 그런지 거리 분위기는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우체통이 서 있던 자리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유곽 '상반루' 자리에는 빵집과 자전거포가 들어서 있다. 이 동네에서 45년째 살고 있다는 자전거포 주인 채수출(59) 씨를 만났다. "우리 자전거포가 '상반루' 자리라니, 유곽 건물로 알고는 있었지만, 듣고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웃음) 제가 열네 살 때 이곳(명산동)에 왔으니까 딱 45년이 됩니다. 처음에는 형님이 운영하는 자전거포 일을 도우면서 기술을 배웠죠. 그때만 해도 이 길은 자동차 두 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는 2차선 도로였습니다. 1989년인가 4차선으로 확장됐죠." 해방과 함께 유곽은 사라진다. 일본 기생들도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조선 여성들은 길 건너 산동네(개복동, 창성동 일대)로 옮겨 성매매를 계속한다. '오백고지'로 불리는 집창촌을 이룬 것. 이에 대해 채씨는 "자그만 동네에 병원과 약국이 세 개씩이나 있었던 것도 그에 연유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모 산부인과는 '오백고지 아가씨들 상대로 돈을 가마니로 벌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는 것. 채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곳 토박이 노인에게 들은 얘기인데, 유곽 초기에는 기모노 차림의 일본 사람들이 자그만 배를 타고 이곳까지 올라와 아가씨들과 술도 마시고 유희를 즐겼다고 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곽 건물이 많이 남아 있었죠. 지금도 안으로 들어가면 유곽에서 사용하던 우물과 정원의 괴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우리 자전거포도 20여 년 전 옆집에서 건물을 짓다가 무너져 새로 지었죠. 시장 입구에 있던 화교소학교가 옛날 유곽(칠복루)이었죠. 2002년 봄인가, 화재가 났을 때 제가 처음 발견하고 신고했어요. 친구와 얘기하고 있는데 검은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더라고요. 곧바로 신고하고 집에서 호루라기를 가지고 나와 교통을 통제했죠. 신고가 조금만 늦었어도 옆 건물까지 번졌을 겁니다. 급사가 쓰레기를 소각하고 있었는데, 바람을 타고 대형 화재로 번진 거죠." 칠복루는 1925년경 향나무 등 고급 목재를 일본에서 가져다 지은 목조건물(대지 576평, 건물 1, 2층 각 90평)이었다. 해방 후 적산가옥이 됐다가 화교협회가 인수, 1949년 11월부터 화교소학교 건물로 사용해왔다. 정원에 있던 일본식 석탑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광장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명산동 거리에는 해방 후 군산국악원을 비롯해 금주당(아이스케키집), 구암병원, 백제병원, 백약국, 명산옥, 대지약국, 서해원, 대북루(중국음식점), 백운목욕탕, 화교소학교, 왕자표 고무신 대리점 등 많은 상가와 식당이 들어섰다. 명산사거리 부근에는 파출소, 덕수병원, 홍약국, 건재상, 서점 등이 있었고, 명산시장에는 피난민이 운영하는 국수 공장도 있었다. 그중 여약사(백효기)가 운영하는 백약국은 많은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언변이 좋았던 백 약사는 1950년대 전북에서 유일한 여성 야당 정치인으로 도의원을 지냈다. 동국사 승려 고은이 두 번째 자살을 시도했던 곳도 백약국이다.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어느 날 오후 약국에 들렀던 고은이 아무도 없는 사이에 극약 다섯 알을 먹고 저승 문턱에 다다르는 찰나, 백 약사가 발견하고 길 건너에 있던 구암병원 응급실로 옮겨 살려낸 것. 채씨는 아이스케이크와 금주당 이야기도 꺼냈다.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기 전 금주당 자리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는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하고 달콤했던 금주당 아이스케이크와 행상들에게 인심이 후했던 주인 내외가 생각난다"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Vice null Time08 July 2015 12:53:44


물속에서 사진 찍는 제나 할러웨이 “수중촬영 매력은 불확실성”

02 July 2015 17:36:52 동아닷컴 : 동아일보 문화 뉴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성공의 가능성이 열린다. 세계 최초의 '여성' 수중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제나 할러웨이(42)가 그런 경우다. 제나 할러웨이의 아시아 최초 사진전 ‘제나 할러웨이-더 판타지’가 3일 개막을 앞두고 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언론에 첫 공개됐다. ‘내게 물은 캔버스, 빛은 물감’이라고 밝힌 할러웨이는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수중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여성작가. 바레인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자란 그는 18세에 이집트에서 열린 스쿠버다이빙 과정에 참가했다가 물 속 세상에 매료됐다. 2주 예정으로 갔지만 무려 2년간 그곳에 머문 할러웨이는 당시 부모에게 선물 받은 수중카메라로 물속 사진을 찍었으며,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는 틈틈이 독학으로 수중촬영을 위한 다양한 사진기법을 실험했다. 말과 여성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수중사진이 호평을 얻으면서 패션 사진계에 진출했다. 나이키, 소니, 엘르, 지큐(GQ) 등 기업 및 패션잡지와 작

Vice 문화 Time02 July 2015 17:36:52


통합3호 : 고자 양성시대의 결혼고찰 / 백일장 실시

28 November 2014 10:52:06 딴지일보 RSS

2014. 11. 28. 금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1. 결혼 . 입시 , 취업과 함께 인생의 3 대 퀘스트로 불린다 . 즉 , 3 대 스트레스라 불러도 좋겠다 . 인생게임으로 치면 보스급 몹 중 하나 , 이 미션을 클리어 하지 않으면 ' 쪼렙 ' 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한 서버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곳을 한국이라 부른다 . 무분별한 화학 조미료가 범람하여 혀고자가 양성되듯 , 괴이한 사건 사고로 줄빠타를 맞고 있는 한국 서버 이용자들은 불감의 단계에 이르렀고 급기야 다채로운 분야에서 급속도의 고자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특히 결혼에 관해선 마치 지 일인 양 상냥한 사람이 되는 속성을 보이는 무수한 서버 이용자들 덕에 안 그래도 범람하는 짜증이 분출 , 경제적 결혼고자는 물론 자발적 결혼고자를 양성하는 것이 현 시대의 범고자적 자화상 되겠다 . 사진 :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중년여성이 이 미션을 클리어 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사회적 고정관념을 바꾼 탁월한 업적을 쌓은 바 있다 . 현재로선 미혼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Vice null Time28 November 2014 10:52:06